발병 5일차
갑진년 새해, 나만의 주제가 생기다
함부로 공감하는건 상처가 되기도 한다, 모르면 물어보자
춘천여행을 다녀온 후 친구들을 보내주고 왠지 모를 아쉬움에 코인노래방을 찾아갔다. 장거리 운행까지 했지만 하루를 꽉꽉 채우고 싶었다. 유독 좁고 더 어두웠던 방, 4곡 정도 부르고 귀가해 부모님과 여행에 대해 회포를 풀고 잠에 들었다.
발병 1일차
평소 쉬이 상하는 약한 목이라서 그저 목소리가 쉰 것이라 생각했다. 물 많이 먹고 말 줄이면 금방 회복될 줄 알았으나 점심 이후로 목소리는 더욱 잠기고 몸살 기운과 함께 열이 시작되었다. 가벼운 증세로 여기어 집에 있는 약으로 진정시켜 보았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취침시간 두통과 함께 등과 팔, 다리는 땀으로 젖어 열을 내리느라 쉴새없이 뒤척이며 갑자기 나타난 증상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발병 2일차
어렵게 하루를 지새고 보니 촉촉해진 바닥이불과 찝찝한 옷에서 어젯 밤이 굉장히 치열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맞이한 아침은 39도의 고열, 두통, 근육통, 몸살, 기침, 콧물, 구토, 목소리도 온전히 나오지 않고 말을 할때 마다 느껴오는 찢어지는 듯한 따가움이였다.
물만 먹어도 개워냈기에 늦은 오후에 내과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 코로나 검사키트와 비슷한 형태로 검사를 진행한 결과. 병명은 A형 독감. 무슨 감기가 이렇게 강한가 싶었는데 그 이름을 들으니 납득이 되었다. 의사님도 지인들에게 말도 못하게 힘들다고 연락을 받았다 했다. 그 말을 들어도 지금 너무 힘들기 때문에 위로보다는 독감이 맞구나하는 확신을 갖게됐다. 수액까지 맞고 간신히 집에 들어와 입맛도 없는데 약은 먹어야 했기에 흰 죽으로 끼니를 채웠다. 정확히 다섯 숫가락이 전부였다. 그 이상은 속이 울렁거려서 들어가지 않았다. 최선의 속도로 느릿느릿 약을 챙겨 하루종일 잠자며 회복을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타미플루 처방 받으면서 반드시 꼬박꼬박 챙겨 드시라고 의사님과 약사님이 강조하는시는 건 처음이었다.
발병 3일차
드라마틱하게 호전되면 좋으련만 근육통만 떨어지고 괴로움은 여전했다. 전날과 크게 다를것 없이 죽과 약으로 버티며 계속 잠을 청했다. 이때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2일차부터 후각과 미각이 고장이 났던 것이다. 음식냄새를 가까이 맞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짠 맛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불편한 속 때문에 이온음료를 먹는데 단 맛을 느낄수 없었다. 그렇게 죽, 약, 잠 3가지로 하루를 흘려보냈다.
발병 4일차
굼뜨긴해도 몸을 가눌여력이 생겼다. 딱 몸살과 근육통, 열 1도 나아졌다. 속도 편안해져 일반식으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목이 더욱 말썽을 부렸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있고 침도 삼키기 어려워져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아무래도 계속 기침하면서 많이 상한 것으로 보였다. 약이 늘어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통과 열도 늦게 떨어지는 듯해 한번 더 수액을 받았다. 회복이 되고있다고 느껴진게 첫 수액을 맞고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 수액은 확실히 몸이 진정되는게 많이 느껴졌다. 매 끼니마다 약을 먹고 나니 잠에 들 때 쯤엔 대부분의 증산이 완화 되었다. 이 때 처음 안심한 순간이었다.
발병 5일차
통증들과 열은 사라졌다. 다만 후각, 미각, 약간의 인후통, 잔기침과 목소리가 안나오는 증상이 남아있다. 나머지는 시간이 흐르면 돌아올 것 같은데 목소리는 통증도 없는데 왜 소리를 잘 못내는지 모르겠다. 힘이 아예 없어 성대가 잘 붙지 않고 목소리가 작고 바람소리가 많고 탁하다. 한 문장을 다 말하지도 못하고 떨면서 말을 하게 된다. 인후통이 사라지면 될까라는 막연한 생각 뿐인데 처음 격는 상황이라 살짝 걱정이 된다.
면접보고 얼른 취업해야하는 현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하루하루가 아쉬운 상황인지라 조급한 마음이다. 아픈 바람에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할 시간이 많이 지니 감정적으로 얻어가는게 있었다.
갑진년 새해, 나만의 주제가 생기다
함부로 공감하는건 상처가 되기도 한다, 모르면 물어보자
이번 독감으로 듣기만 하고 추측만 했던 고통을 느꼈다. 고열을 동반한 두통, 목소리를 낼 수 없음 이 두가지가 가장 힘들었다. 손오공의 긴고아가 이런 느낌일까? 이마부터 머리 전체를 둘러싸 누군가 지긋히 누군가의 압박을 받는 아픔과 어지러움을 주는 열이 함께 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아무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이 지끈거림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따라다니며 열이 땀을 내어 잠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5일차인 지금도 겪고 있는 목소리에 대한 증상은 정말 답답하고 갑갑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다. 감기에 걸려 소리를 낼 수 없다는게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에 목감기라고 하면 쉰 소리가 나긴 해도 하고 싶은 말은 무리없이 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 그냥 할 수가 없다. 바디랭귀지까지 사용하면서 의사표현을 할거라고는 의심조차 못했다.
고작 독감일 수도 있겠지만 평소보다 더한 아픔을 겪으니 지나온 경험과 추측으로 쌓여진 답들로 비슷할 것 같은 고통과 아픔의 정도를 짐작 하지 않았을지 그 기준으로 상대방을 얼마나 이해하고 느꼈을지 돌아보게 되었다. 독감뿐만 아니라 대화 속에서도 한번 더 물어본다면 이야기를 더 끌어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생각으로 만들어낸 공감을 억지로 상대방에게 끼워 맞추어 같은 감정과 생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하는 고민을 해봤다.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공감은 상대방의 상황에서 당신이 무엇을 할지만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고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성인이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기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개인에게 중요한 일이고 집중해야하는 문제라면 더 물어보고 어떤 생각을 지니고 행동을 했는지 혹은 할건지 파악하는 시간을 더 길게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공감은 제거하고 최소한 올바른 이해로 공감을 하게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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